트렁크 가득 채우던 내가 짐을 반으로 줄인 이유
캠핑 초반의 나는 '혹시 몰라서' 병에 걸려 있었다. 혹시 몰라서 여벌 텐트 폴대, 혹시 몰라서 대형 테이블에 보조 테이블까지, 혹시 몰라서 온갖 조리도구를 다 챙겼다. 트렁크는 항상 꽉 찼고, 뒷좌석 발밑까지 짐이 쌓였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어느 캠핑장에서 짐을 다 내리고 나니, 정작 절반은 한 번도 꺼내지 않고 그대로 다시 실었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짐을 줄이기로 결심한 계기
그날 유독 힘들었던 이유가 있었다. 짐을 내리고 싣는 데만 40분 넘게 걸렸고, 그사이 아이들은 심심해하며 짜증을 냈다. 설치도 늦어지고, 결국 첫날 저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갔다. "이 많은 짐이 다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그때 처음 들었다.
실제로 뭘 뺐는지 기록해봤다
다음 캠핑부터 나는 짐을 쓴 것과 안 쓴 것으로 나눠 기록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캠핑을 반복하며 데이터가 쌓이자, 안 쓰는 물건들의 패턴이 보였다.
뺀 것들
보조 테이블: 메인 테이블 하나로 충분했다. 여벌 조리도구 세트: 코펠 하나에 프라이팬 하나면 대부분의 요리가 가능했다. 대형 화로대: 부피만 크고 실제로 쓰는 시간은 하루에 한두 시간뿐이라, 소형으로 바꿨다. 다양한 색의 조명: 랜턴 하나와 헤드랜턴 하나면 충분했는데, 감성을 위해 사 모았던 조명들이 짐만 늘렸다. 여벌 옷 과다: 1박 2일에 3벌씩 챙기던 아이 옷을, 실제 필요한 양만큼(하루 1.5벌 기준)으로 줄였다.
남긴 것들
반대로 절대 안 뺀 것들도 있다. 구급낭, 아이 전용 침낭, 헤드랜턴, 물, 그리고 방수 시트. 이것들은 부피가 크지 않으면서도 안전과 직결되는 물건이라, 아무리 짐을 줄여도 항상 제일 먼저 챙긴다.
짐을 줄이니 달라진 것
짐을 절반쯤 줄이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설치·철수 시간이었다. 예전엔 40분 넘게 걸리던 설치가 20분 안으로 줄었다. 그만큼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늘었다. 그리고 짐을 고르는 과정에서 '이게 정말 필요한가'를 계속 물으면서, 캠핑의 본질이 장비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짐을 줄이는 나만의 기준
지금은 새 장비를 살 때도, 캠핑 목록에 뭘 넣을 때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난 세 번의 캠핑에서 이걸 실제로 썼나?" 세 번 중 한 번도 안 썼다면 목록에서 뺀다. 그리고 "이게 없으면 정말 곤란한가, 아니면 그냥 있으면 좋은 건가"를 구분한다. 곤란한 것만 남기고 좋으면 좋은 것들은 과감히 뺀다.
완벽한 캠핑보다 가벼운 캠핑
이제 우리 가족 캠핑은 예전보다 훨씬 단출하다. 그런데 만족도는 더 높다. 짐이 적으니 설치가 빠르고, 설치가 빠르니 아이들과 놀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이 결국 캠핑에서 우리가 진짜 원했던 것이었다. 캠핑을 다니는 부모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짐을 다 채우는 것보다, 안 쓰는 것 하나를 빼는 게 캠핑을 더 즐겁게 만든다고.